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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중,독립군의 길을 걷다 후기(이순일)
번호   6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10-08 조회수   34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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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중국 변경,
항일 독립군의 길을 찾다
-4348.7.19.(일)-7.27.(월) 8박 9일 여정-
마산 태봉고등학교 교사 이순일

꿈길 같은 여행이었다.
생명이 살아가는 것 자체가 우주 속을 헤엄치는 것과 같으니 여행을 꿈길이라고 부르는 것도 괜찮은 표현인 것 같다.
‘나락한알’에서 기획한 8박 9일의 여행계획을 듣고 230만원이라는 여행 경비에도 불구하고 단번에 함께 하기로 결정하였다.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선조들의 피어린 길을 탐방하는 길이고, 내가 평생 보고 싶던 백두산과 두만강을 찾는 길이고, 방학 중이니 망설일 필요가 있겠는가?
우리 일행 23명은 7월 19일 김해공항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지만 금방 친숙함을 느끼는 것은 ‘민주시민교육원’의 ‘민주’라는 묶음 때문이리라.
19시 40분 아에로플로트(러시아 항공) su5663은 동해로 날아 올랐다. 8박 9일의 미지를 향한 여행의 중력이 지그시 가슴을 눌렸다.
동해로 북한 영공을 직선으로 통과하여 1시간 30분만에 블라디보스톡 공항에 도착하다. 블라디-정복하다, 보스톡-동쪽이란 뜻이라 하니 19세기에 러시아가 겨울에도 얼지 않는 항구를 찾아서 정복한 땅이다.
<신한촌(新韓村)>
신한촌은 블라디보스톡 시내에 있다. 신한촌 기념비에 묵념하다. 한 서린 장소다. 1874년부터 국경을 넘어온 한인(韓人)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여 해외 독립운동의 거점이 되었는데, 1937년 스탈린이 중앙아시아로 강제로 이주시켜서 그 흔적조차 없어졌다.
1999년 한민족연구소에서 한국에서 가져간 돌로 기념비를 세웠다.
탑글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다.
‘민족의 최고 가치는 자주와 독립이다. 이를 수호하기 위한 투쟁은 민족적 성전이며 신한촌은 그 성전의 요람으로 얼과 넋이 깃들고 한민족의 피와 땀이 어려 있는 곳이다.’
<순야센 고향 마을>
동시베리아의 시작 지점이 되는 우수리스크로 가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을 지나서 ‘고향 마을’에 도착하다. 우즈베키스탄 등지로 강제 이주 당했던 고려인들의 후예들 중에 자신들의 선조가 살던 연해주로 다시 돌아오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을 돕고자 활동하는 한국 사람들이 지원하는 마을 중에 하나가 ‘고향 마을’이다.
우리는 이 곳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고 보드카를 마시고 노래 부르고 춤도 췄다.
러시아 노래 ‘카츄샤’도 부르고 ‘나의 살던 고향 ’도 부르며 손에 손을 잡고 둥글게 돌며 춤을 췄고 다시 만나자며 손을 흔들고 이별했다.

<고려인 140주년 기념관>
우수리스크 시내에 있는데 한국 정부가 돈을 대어서 건립한 시설이다. 고려인들이 1864년 처음으로 이 곳에 이주했는데 2004년이 14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 사업은 한국 정부와 북한 정부의 동의를 얻어서 러시아 정부가 승인했다. 좌우합작의 모범을 보인 셈이다.
깔끔한 2층 건물인데 이 곳 고려인들의 문화 중심이 되고 있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 아래층 연습실에서는 5∼60쯤 되어 보이는 부인들이 고려춤을 연습하고 있다.

우리 일행은 우수리스크에서 발해성터, 발해의 솔빈부가 있던 솔빈(스와푼)강가의 ‘이상설선생유허비’, 우수리스크 시내의 ‘최재형선생 생가’ 등을 둘러보고 국경마을 크라스키노로 가서 안중근외 11인 의사들이 무명지를 잘라서 대한독립을 결의한 것을 기념하는 ‘단지동맹비’를 참배하다.
최근 이 곳에 있는 발해의 염주성터에서 청동낙타상을 발굴했다고 동북아 역사재단이 발표했다.

<중국 연변에서>
도문시에 있는 봉오동 전적지를 참배 하다. 1920년 홍범도 장군이 일본군을 이 곳으로 유인하여 일본군 157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어릴 때부터 책에서만 보던 역사 현장을 직접 발로 디디니 내가 그 날의 전투 현장에 있는 듯하다.
<두만강에서 배를 타다>
배 위에서 ‘눈물 젖은 두만강’을 노래하며 속으로 울다. 강 위에서 치어다 보이는 북한의 가파른 산에도 밭을 일구어 놓았다. 얼마나 먹을 것이 귀했으면 저 가파른 곳을 일구었을꼬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다. 오른 발 양말을 벗고 발을 강물에 담근다. 미지근하다, 강물은 내 마음같이 흐리다.
<천지를 참배하다>
하늘이 우리를 위하여 하늘 문을 열어 주어서 시퍼런 천지를 환하게 바라보다. 큰절을 올리다. 오른 주먹 불끈 쥐고 마음 속으로 크게 외쳤다. ‘외세를 뿌리치고 우리조국 통일하세!’
<용정의 일송정>
일송정에서 혜란강을 굽어보며 ‘선구자’를 합창하다. 말 달리던 선구자...... .
<윤동주>
명동촌에 있는 윤동주의 생가를 방문하다. 세운 돌이나 누운 돌에도 온통 윤동주의 시를 새겨 두었다. 1945년 28살에 억울하게 죽은 시인은 오늘날에 이렇게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김선생은 윤동주의 ‘편지’를 노래하다. 박선생은 ‘별헤는 밤’을 낭송하다. 우리는 이렇게 시인의 초혼제를 지냈다.

시간이 되었으므로 27일 12시 10분 연길 공항을 이륙하여 3시간 만에 김해 공항에 도착하다. 에어부산은 북한 영공을 통과하지 못하니 서해로 나가서 한참 돌아온다.
총 비행거리 약 1,600Km, 비행기 삯 100만원. 이것도 분단의 불편함이다.
이 번 여행에서 나라 잃은 백성의 설움을 뼈저리게 느꼈다.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분단체제를 해소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임을 더욱 명확히 깨닫는 여행이었다.
8박 9일 동안 고락을 함께 한 일행은 이런 마음으로 더욱 친해졌다.
이 여행을 기획하고 이끈 ‘나락한알’에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